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 지은이 지눌(知訥)스님
                  초심학인(출가하여 처음 글을배우는 沙彌)을 경계하는 글

 지은이 지눌(知訥)(1158~1210)스님은 고려 신종(神宗)때의 고승으로 성(姓)은 정씨(鄭氏)
자호(自號)는 목우자(牧牛子)이며 황해도 서흥군 사람인데  어려서부터 신병(身病)이 잦아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썼으나 효력이 없고 사경(死境)을 헤메게되자 아버지 정광우(鄭光遇)
는 쾌차하면 출가시키겠노라고 불전(佛殿)에 기도(祈禱)드렸는데 감응(感應)이 있어 쾌차하
자 명종(明宗)3년(1173)에 16세의 나이로 종휘(宗暉)스님에게서 삭발(削髮)출가(出家)하였다.

 그후 일정한 스승이 없이 도(道)를 구하였으며 25세때인 명종 12년(1182)에 선과(禪科)합격
하고 창평의 청원사(淸源寺)에 주석하였으며 그때 육조단경을 탐독하다가 깊이 깨달은 바가
있어서 즉시 하가산(下柯山) 보문사에 들어가 대장경을 열람하다가 이통현(李通玄)장자의
화엄론을 보고 믿음이 더욱 굳어졌다.

 득재(得才)란 사람의 청으로 팔공산 거조사(居祖寺)에서 여러 고승들을 만나 여러해 동안
정혜(定慧)를 닦았고 신종(神宗)1년(1198)에는 도반(道伴) 몇사람과 함께 지이산(智異山) 상
무주암(上無住菴)에 들어가 바깥세상과 인연을 끊고 내관(內觀)에 힘써서 현묘한 곳 까지
이르렀으며 신종(神宗)3년(1200)에 송광산(松廣山) 길상사(吉祥寺)로 옮겨 11년 동안 학인
들을 지도하고 법(法)을 행(行)하니 승속(僧俗)이 모여들어 대총림(大叢林)을 이루었다.

  희종(熙宗)6년(1210)에 하루는 어머니를 위한 천도식을 갖고 문도들을 모이게한 후 말하
되 ‘내가 세상인연이 오래지 않으니 각자는 노력하여 힘써 깨닫기를 바라노라.’하고 밤새
도록 평일 처럼 문답을 하였으며 새벽이되어 오늘이 며칠인가? 물음에 3월27일이라 대답
하니 말하되

자개안불시조안(●個眼不是祖眼)이요

이 눈은 조사의 눈이 아니요

자개비불시조비(●個鼻不是祖鼻)라

이 코도 조사의 코가 아니라

자개구불시조구(●個口不是祖口)요

이 입도 조사의 입이 아니니

자개설불시양생설(●個舌不是孃生舌)이라

이 혀도 여자가 낳은 혀가 아니라

하고 주장자를 짚은채로홀연히 세상을 떠나니 대사의 세수가 53이요 법랍(法臘)이 36세였
으며 왕은 시호를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라했다.
은 此의 뜻과 동일하며 글자는 말씀언에 책받침한 자(字)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