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破邪)의
논리
- 인본주의, 신본주의 -
①지금까지
우리는 불교와 일신교의 주요한 가치관들-불타(佛陀)와 신(神)의 관계, 인간
관(人間觀),
역사관(歷史觀), 구원관(救援觀)의 문제들에 관하여 비교 논의하여 왔다. 이러
한
논의를 통하여 양자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불교 가치관의 수승(殊勝)함을 인식하였다.
여러
가지 논의가 많았지만, 불교, 일신교의 기본적인 차이는 '인본주의(人本主義)'와
'
신본주의(神本主義)'로 극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
②그들은 철두철미하게
인간을 죄인으로 단정하고,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신의
도구로 역사함으로써
종말의 심판을 면하고 신의나라(神國,天國)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구원은 오로지 예수를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며, 예수를 믿지 아니하
는 자는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단지 예수를 믿지 아니하였다는 그 하나의 이유 때문에
불의 심판을
받고 지옥에서 영원히 이를 갈며 신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③일신교의
이러한 탈(脫)인간적 신본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선포하
는 것으로부터
불교의 역사는 시작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일신교에 대한 비판과 논파는
단순한 종교끼리의 대결이나 세력 다툼이 아니라, 불교가 불교로서 존재하기 위한
필연
적인 자기 표현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붓다(Buddha)의 모든
교설은 외도비판, 곧 파사(破
邪)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잘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일신교를 비판하고 그 행위를 문제 삼으면 '점잖지 못
하다'든지 '우리
할 일만 하면 되지' 하는 반박에 흔히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천
만 착각이다.
지금 당장 불경을 펼쳐보다. 붓다의 교설을 경청해 보라. 외도비판 없이 전
개되는
경전이 어디 있는가? 냉철하고 이성적인 파사 없이 설하는 교법이 어디 있는가?
일신교의 신본주의를
비판하고 인간과 자아의 자유와 존엄성을 실현하는 파사현정
(破邪顯正)이야말로 불교
그 자체이며, 보살의 수행 그 자체이다.
④불교는 단순히
무신론(無神論)이 아니다. 붓다는 단순히 인간으로 머물지 않는다. 불
교는 신을 포용하고,
붓다는 신과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존귀하시다. 그러나 인간을 창조
하고 지배하며
심판하는 형상의 신, 절대적 타자(他者)로서의 신은 결코 존재하지 아니한
다. 그것은
고대 전제군주 시대에 인간의 무지와 분노가 만들어낸 인간 자신의
영상(影像
)이다.
신은
인간 생명 그 자체이며, 인간성이 곧 신성(神性)이고 불성(佛性)이다. 신과 인간은
일체이며 나와 붓다는 동체이다. 그런 까닭에 우주의 중심은 나 자신이다. 인간 자신이다.
⑤우리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긍정한다. 인간의 죄와 허약성을 긍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중생(衆生)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참회 정진하는 것 아닌가. 고행하는 것
아닌가. 세상의
부와 영화를 포기하면서까지 수행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진 짐은 무겁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이 짐을 벗어 남에게
맡기고 우리 인생을
대신 살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초등학교 어린이도 간섭하고 지배
하려면 반발하는데,
우리가 어찌 우리 인생의 주인자리를 도피할 수 있겠는가? 아니, 도
피할래야 결코
도피할 수 없다.
생명은
스스로 자유(自由)이며 자주(自主)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말미암아 존재하지 못
하는
생명, 스스로 주인 노릇 못하는 생명은 생명이 아니다.피조(破造)의 생명, 그것은
이
미 생명이 아니다. 한낱 로봇에 불과할 뿐이다.
⑥인류의 역사는
신본주의로부터 인본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일신교 안에서도 과거의
신이 이미 현재의
신이 아니다. 신에 대한 해석도 놀랄 만큼 변혁되고 있다. 《성경》에
대한 해석도
놀랄 만큼 새로와 지고 있다. 예수에 대한 평가도 빠른 속도로 변질되어 가
고 있다.
'신의
심판, 불의 심판'을 그들 스스로도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 교회에서는 이것을
신
앙교육의 문제로 염려하고 있지만, 인간의 양심과 양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교회가
믿게 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아니다. 교회가 더 이상 인간을 완전히 세뇌할
수는 없는 것
이다. 바로 이것이 인본주의의 승리이다. 아니, 인간의 승리이다.(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