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법인(三法印)을 중심으로
         불교적 가치관의 정립(上)

  1. 머리말

 석가모니,  그의 생애에 대해서 우리는 줄곧 많은 관심을 쏟아왔고 비록 신화적이거나 과장된 표현
이 많을지라도 수 많은 전기를 통하여 그의 삶을 이해하고 추앙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관심을
가져야할 대목은 그의 생애가 길에서 시작되어 길에서 끝났다는 사실이라든지, 또는 그가 영화로운
태자의 지위를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구도에 나섰다라든지하는 그 생활양식의 전환에 앞서 깨달음을
통해서 그가 제시한 인간의 길이다.

  인간과 세상을 바로 파악하고 그 삶이 지향할 바를 우리가 인식하는 태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
간들의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이고도 우선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만일 석가모니가 제시한
불교적 가치관이 인간이 지향할 가장 이상적인 가치관이 될 수 없을 때 그것의 생명력은 유한적일 수
밖에 없고 그것은 곧 석가모니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설령 불교적 가치관이
우리의 바람직한 가치관과 합치된다 하더라도 그 불교적 가치관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굴절되어 있
다면 문제는 다시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

  사실 불교적 가치관은 오늘날 적지 않게 왜곡, 변질되어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인간과 사회에 불교
가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는 터이다.특히 한국불교는 1600년의
전통은 자랑하면서도 그 가치관의 정립에 있어서는 더없이 소홀히 함으로써 개인이나 민족의 향방을
제시하지 못한채 그 영향력은 점차 감소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불교적 가치관을 정립하고 그것을 구체화 시키는 작업이 끊임없이 진행되어야 할
이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일단 인간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시각, 다시 말해서
기본적인 삶의 인식태도를 불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교리 가운데서도 노른자라고 할 수 있는 사법인(
四法印)을 통하여 정립해 보고자 한다.

2. 현실의 인식과 극복으로서의 삶

  불교적 가치관은 인간, 그리고 현실을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불교가 인간을
기피하고 현실과 괴리(乖離)된 종교로 잘못 인식되어져 오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비록 불교적 가치관이 올바르게 그리고 풍부하게 사회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그 가치관이 가볍게
평가되어선 안될 것이다. 비유컨데 깊은 물일수록 퍼내기가 힘든 법이다. 그러나 그 물이 우리 인간이 마시지
않으면 안될 생명수라고 한다면 퍼내기가 힘들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삶의 재인
식과 그 극복을 위하여 사법인의 그릇된 이해를 바로 잡고 그것을 인간과 사회에 구체화 시킴으로써 불교가 명
실상부한 현실 종교로 이해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제행무상(諸行無常)

  무상(無常)이란 단어가 허무나 염세 따위로 파악되어 온 것이 일반적인 기존 관념이다. 그러나 무상이란 글자
그대로 항상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객관적인 냉엄한 현실 인식이다. 제행(諸行)의 행(行)은 존재에 대한
시간적 형성작용을 뜻한다. 즉 일체의 현상계는 끊임없이 생멸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서 불교의 부정의 논리를 발견하다. 그 어느 것도 집착할 바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곧잘 고정된
어떤 것을 설정하고 그것에 집착하기 마련이지만 실은 물질이나 마음이나 가변성을 나타내고 그에 의해 끊임없
이 변화하는 것이 우주일체의 보편적 원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제행무상은 의지의 작용여하에 따라서 모든 현상계는 얼마든지 변화되어질 수 있음을 암시하
기도 한다. 즉 의지를 투자함으로써 변화의 진전을 가속화 시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제행무상이 불교의
인과법칙에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상이나 인과법칙이 허무주의 또는 숙명론 따위로 잘못 수용
되어 오면서 그것이 상징하고자 하는 의미는 도리어 배반되어져 왔으며 그로 인해서 사회현실과 동떨어진 불교
, 지배자의 논리에 부응하는 불교가 되어 왔음은 불교역사의 주류를 차지했던 것이다. 즉 인간이 행사하는 어떠
한 의지도 그것은 무상한 것이며 인생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이미 규정되어진 존재인 까닭
에 모든 것을 체념하고 긍정하는 가운데 자기만족을 꾀할 수밖에 없다는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주어
진 조건에 대한 개혁의 의지를 발휘하지 못한채 어떤 절대적 힘을 설정, 그것을 의지하고 자기위안의 도구로 이
용해 왔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이 부정의 논리, 의지의 당위성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면서 인간의 자기소외 현상은 더욱 두
드러져 갔다. 특히 현대와 같이 사회의 제반구조가 전문화, 분업화됨에 따라서 인간은 안정만은 우선적으로 갈
구하게 되고 사회적 모순에 대한 체념에 쉽게 영합함으로써 정신적 빈곤과 아울러 인간의 비인간화를 묵인하는
셈이 되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부정의 논리는 인간과 사회의 궁극적인 긍정을 향하는 영구혁명의 논리라는 점
에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노만-필 의'적극적 사고방식"은 여기에서도 해당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
체제의 발전사를 보더라도 원시사회에서 중세 봉건사회를 거쳐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는 가변성에 근
거한 부정의 논리와 인간이 지불한 의지에 보상하는 식으로 발전해 왔던 것이다.

  결국 사회체제의 변화는 시대의식을 변화시켜 왔지만 그것은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부단한
의지를 축적함으로써 얻어진 결과였던 것이다. 이로써 역사의 초역사성을 우리는 제행무상에서 도출해내게된
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