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우공양과 불교정신

                                                                
  발우공양이란 스님들의 식사를 말한다. 스님들의 식사는 일반사람들의 식사방법과 다르다. 발우공양은 식당작법(食堂作法)을 따라 하게되
는데 이 식당작법을 살펴보면 한끼의 식사까지 불교의 수행정신이 스며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흔히 발우공양은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어 낭비가 없으며, 음식을 남기지 않아 설거지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설거지로 인해 환경을 오
염시키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러한 특징은 지혜의 반영일 뿐이다. 식당작법을 통해 스님들의 식사란 수행임을 알 수 있기 때
문이다. 여기에는 출가 수행자가 음식을 매개로 중생과 함께하는 지혜의 정신이 숨어있는 것이다.

  식당작법중에  供養(공양)할 때 반드시 관상(觀想)하는 오관게(五觀偈)가 있다. 오관게를 오관상념게(五觀想念偈)라고도 하는데 다섯 시귀
(詩句)의 내용을 관상하여 염하는 것을 말한다.

  즉 관상이라는 것은 시귀의 내용을 떠올려서 이치(理致)를 관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시귀의 내용을 영상화하여 떠올림을 상(想)이라
고 하고 그 영상화된 내용의 뜻 즉 이치를 잊어버리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념(念)이라고 하는데 특히 이 念은 집중, 앎, 봄, 기억 등의 작용이
며 곧 관(觀)하는 지혜를 말한다. 그러므로 詩句의 뜻을 영상화하여 념하는 것이 바로 관이다. 따라서 관상한다는 것은 곧 想을 觀하여 잊어
버리지 않음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을 뜻한다.

  이제 오관게(五觀偈)를 통해 발우공양이라는 수행의 불교정신을 찾아가보자.


  ① 이 공양이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와 땀의 고통이 배어있는가를 헤아리고, (計功多少 量彼來處)


  이 게송에서 관상해야할 대상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음식이 이루어지기까지의 많은 사람의 피땀이 서린 노고와 시주(施主)의 은덕(恩
德)을 관상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의 음식이 이루어지기까지 많은 생명이 살상되어 음식이 이루어짐을 관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많
은 사람의 노고, 시주의 은덕과 음식을 위한 생명에 대한 은혜을 말한다. 하나의 음식이 이루어지기까지의 많은 사람과 생명에 대한 은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다. 따라서 음식의 고마움은 곧 많은사람의 노고와 시주의 은덕, 그리고 생명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게 관상하게 하는 것이 이 게송이다.


  ② 자기의 덕행이 공양을 받기에 부끄럽지 않는가를 생각한다.(忖己德行 全缺應供)

          

  첫째 게송이 많은 사람과 생명에 대한 관상이라면 여기서의 게송은 자기자신이 과연 음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를 관상하는 것이
다. 자기자신이 음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음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결여와 은혜에 대한 결여를 뜻한다. 이러한 결여는 탐진치의 마음이
며, 모든 존재를 분리시켜 보는 무지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이러한 탐진치를 없애는 수행을 바로 덕행이라 하며 따라서 음식을 받을 수 있는
덕행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음식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 된다. 즉 음식을 수용할 마음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자신의
덕행을 관상하여 늘 부끄러운 마음을 지닐 때 뻔뻔스러운 마음이 사라지고 음식에 대한 은혜가 되살아나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덕행을
관상하는 것이다. 물론 첫째 게송의 은혜에 대한 관상이 바탕이 될 때만이 둘째 게송을 통해 자신의 덕행을 관상하는 것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③ 마음을 악으로부터 보호하고 허물을 여의는 것은 탐․진․치 삼독(貪․瞋․癡 三毒)을 버리는 것이 으뜸이니,(防心離過 貪等爲宗)


  이는 탐․진․치(貪․瞋․痴)를 관상하여야함을 말한다. 왜냐하면 탐욕을 버린다는 것은 계(戒)를 지키고 보시(布施)하는 것을 말하며 성냄을
버린다는 것은 선정(禪定)을 말하고 어리석음을 버린다는 것은 혜(慧)를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탐․진․치를 버림으로써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 것은 바로 계․정․혜 삼학(戒․定․慧 三學)을 통해 탐․진․치를 없애기 위함이며, 따라서 음식을 받는 이유를 관
상하는 것이다. 


  ④ 이 음식을 약으로 알아 육신의 고달품을 치료하여,(正思良藥 爲療形枯)


  이 게송은 음식을 육신을 지탱시키는 휼륭한 약에 비유한 것으로 육신이 망가지면 수행할 수가 없음을 들어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관상
하라는 것이다.  


  ⑤ 道業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爲成道業 應受此食)


  음식을 먹는 최종 목적은 도업(道業)을 이루고자 음식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업이란 무엇인가 혜명(慧命)을 잇고 불도(佛道)를 이
루기 위해 수행(修行)함을 말한다. 즉 음식을 받는 것은 ‘위없는 부처의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한 수행을 뜻한다. 음식을 받는 것은 수행하기
위함이고, 수행의 구경은 깨달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깨치기 위해 음식을 받는 것이며 이것을 관상하는 것이 다섯번째의 관상이다.


  이상의 오관게를 통해 발우공양의 불교적 정신를 되새겨보면 첫째 詩句(偈頌)는 은혜, 둘째 시귀는 음식을 받을만한지의 자격, 셋째 시귀
는 음식을 받는 이유, 넷째 시귀는 육신의 건강을 위해 음식을 받는 것으로 수행의 조건인 건강한 육체, 다섯째 시귀는 수행하기 위해서 음식
을 받는 것, 즉 수행은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것을 일상생활에서 적용시켜보면 불교의 음식에 대한 지혜를
그대로 응용할 수 있다.
 

  첫째 시귀의 은혜는 음식과 관련된 많은 사람의 노고와 시주의 은덕, 그리고 생물의 생명을 바친 은혜를 말하는 것으로 이 은혜는 모든 생
명과 무생명이 그물과 같이 분리되어 있지 않는 하나임을 말한다. 인간은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삶자체가 남을 의지하여 유지되기 때
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70~80 가 물이다. 따라서 흘러가는 물이나 내리는 비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땅, 햇빛, 바람, 식물, 동
물, 부모형제 등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 생명과 삶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자연계와 부모형제 등은 바로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하나
의 음식이라도 고귀하고 고마운 생명이자 은혜이다. 즉 하나의 음식을 먹더라도 은혜를 알면 곧 불이(不二)의 진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은혜를 모르고 저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자기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연과 부모형제 뿐만아니라 모든 생명을 분리시켜 파괴할 것이다.
즉 하나의 음식이라도 가볍게 여기게 되면 음식과 관련된 모든 자연과 인간관계를 소유관념으로 파악하게 되어 단절과 파괴적 삶을 영위하
게 될 것이다. 때문에 생명으로 이루어진 음식을 스님들은 은혜와 대비심(大悲心)을 실천하기 위하여 소식(素食)과 소식(小食)을 하는 것이다. 
    

  둘째 시귀의 음식을 받을만한지의 자격이라는 것은 자기자신을 늘 반성하는 것을 말한다. 음식에 대해 좋고 나쁨과 많고 적음을 헤아려서
기쁨과 싫어하는 차별심을 가져 음식의 은혜를 망각함을 반성하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시주의 은덕과 많은사람의 노고, 음식자체에대한 은
혜를 늘 생각(관상)하고 음식을 먹는다면 음식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스스로 음식을 절제하고 함부로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

  셋째 시귀의 음식을 먹는 이유는 계․정․혜 삼학(戒․定․慧 三學)을 통해 탐․진․치 삼독(貪․瞋․痴 三毒)을 없애는 것이다. 탐․진․치 삼독의
제거는 출가수행자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삼독심(三毒心)은 마치 무거운 돌을 등에 지고 있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탐진치는 모든 존재가
독립된 것이 없는 不二이기 때문에 내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몰라서 일어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삼독의 마음은 곧 소유(所有)로
서 등에 무거운 돌을 짊어지고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탐진치라는 무거운 소유물을 놓아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놓아버리는 작업으로 남과
나를 단절시키는 탐욕의 경우 계율과 베품을 통해서 없앨 수 있다. 하나의 음식이라도 무소유(無所有)의 은혜임을 안다면 음식을 통해서 탐
욕을 제거하게 되는 것이다.

  성냄과 어리석음도 모든 존재가 그물과 같이 무소유이고 무소득(無所得)임을 음식을 통하여 각성하게 되면 선정과 지혜가 개발된다. 음식
을 통해 삼독심이 제거된다면 사회는 한층 밝아질 것이다.

  다섯째 시귀의 음식을 받는 목적이 수행과 수행을 통한 깨달음에 있다면, 이 수행과 깨달음은 우리사회에 어떠한 이익을 가져올까?  수행은
어두운마음을 밝은마음으로 바꾸는 것을 뜻하며 막힌마음을 열린마음으로 전환하는 것이며, 소유의 마음에서 베품의 마음으로 전환하는 것
을 뜻한다. 이렇게 전환된 마음을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깨달음이란 단절과 파괴의 힘인 탐진치가 사라지고 자연과 인간, 생명과 무생명
등의 연기의 상호관계가 회복됨을 말한다.  

  이상에서 五觀偈를 통하여 발우공양의 불교정신을 알아 보았다. 이러한 불교정신이 사회에 지속되려면 오관게를 관상하는 운동이 불자들
의 실천을 통해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觀想하여 잊어버리지 않으면 몸에 배여서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즉 음식을 관
상하는 자체가 그대로 지혜이기 때문에  불교정신의 한 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