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년 윤달 삼사순례 및 방생법회(역사자료동참자배부/출처:월간중앙)
운주사 千佛千塔의 秘密
13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운주사 천불천탑. 불교미술의 寶庫라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
신비로움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천불천탑의 조형 기법과 문양은 몽골 초
원에 남아있는 석상·사찰의 그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제 그 비밀의 실타래를 푸는 여정 속
으로 떠나 보자.
‘천불천탑(千佛千塔)의 성지(聖地), 불가사의한 신비, 미완의 불국토, 한국 불교의 영원한 화두,
불교미술의 보고, 유례가 없는 한국 불교 유적지, 우주인이 내려와 그린 그림, 삼엄한 의미를 지닌
문양 장식,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양, 불가사의의 상징….’
이 말들은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에 있는 운주사 주변 불탑과 불상들에 헌정된 한국인들의
찬사다. 또한 한국인의 역사의식이자 미의식의 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래서 긍지로 여기거나 한
국문화가 지닌 다양성의 한 증거로 보기도 한다.
운주사는 무등산에서 작은 가지를 뻗어온 해발 100여m 남짓 되는 야트막한 두 산등성이 사이에
없는 듯 엎드려 있다. 저 크고 이름난 절들같이 어느 선사·화상·국사·왕사·대사가 창건한 것도 아
니고, 화려함이나 웅장함이 빛나 소리치는 삼국시대 어느 왕의 배려로 지은 절도 아니다.
1984년부터 91년까지 네 차례의 발굴 조사와 두 차례의 학술 조사 결과 늦어도 11세기 초에 창건
되어 13세기의 전성기를 거쳐, 1495년에 네번째 중수했고 정유재란의 재앙을 겪은 뒤 18세기
초에 간신히 절의 모습을 다시 갖출 수 있었으리라 추측했다.
18세기 이후라면 조선왕조 불교 탄압 정책의 잔혹함이 극심했던 시대적 상황을 떠올릴 수 있는데,
그 때 운주사는 비할 데 없이 적막하고 황량한 시절에 걸려 돌부처들도 돌아앉아 숨을 죽여 울었
을 것이다. 제법 넓었던 절 땅은 세도 부리던 유생 문중의 묘자리가 되고 땔감 장만하는 소유지로
이름이 바뀌거나 나주며 화순 땅 토호들의 경작지로 권리 명의가 넘어갔을 것이다.
운주사는 그렇게 시대와 세상 인심으로부터도 따돌림당하고 설움받으며 잊혀져 갔다. 어떤 돌부
처는 논두렁 밭두렁에서 뒹굴며 삭아 갔고, 또 어떤 것은 오직 아들 하나 점지 받으려는 죄 없는
아낙의 소망 들어주려고 코끝이 짓뭉개져 가면서도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길섶이며 절벽에 기대
어 서서 눈보라·천둥·비바람으로도 끝나지 않는 부처의 길을 닦으며 사람 소식을 기다렸다. 오래
고 고독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사람들이 왔다.
상처로 상처를 꿰매고 눕거나, 앉거나, 서 있는 운주사의 역사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왔다. 한 번
왔던 이들의 마음도 그대로 운주사가 되었다. 이런 운주사에 갔던 시인 조태일은 불후의 민족시집
‘국토’에서 목메이는 영혼을 위로하며 이렇게 노래했다.
…
못생긴 우리들을 맞았다
역시 못생긴 천불천탑이
서서 앉아서 누워서
땅 위에서 땅 속에서
떨어져 나간 콧자욱으로
외짝 팔로 외짝 다리로
일그러진 눈으로 입으로
팔다 남은 작품들일거라는, 혹은
견습 석공들의 실습품일거라는
농담도 미륵세계의 꿈도
한데 어우러져
오로지 정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운주사! 운주사!
운주사의 좌우 두 능선과 한 계곡은 남북 방향으로 뻗었다. 그 능선과 계곡에 70분의 돌부처와
18기의 불탑이 모셔져 있다. 자그마한 터전에 그토록 많은 돌부처와 불탑이 촘촘히 무리지어 있
다는 것과, 석불·석탑을 만든 솜씨가 하도 거칠고 엉성하여 그만 정이 들어버린 탓에 사람들 입에
서는 온갖 소문이 생겨나 번지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마다 입을 댈 만큼 못생기고 초솔(草率)한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이름난 장인의
손기로 잘 다듬어졌더라면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함부로 말해 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말
들이 모이고 쌓여 또 다른 엉뚱한 말이 되면서 천불천탑 이야기가 운주사 아닌 천불천탑의 신비를
키웠고, 무한정으로 커진 신비는 마침내 역사라는 이름으로 깊고 큰 오해를 낳게 된 것이다.
불탑과 불상이 많다는 뜻으로 천불(千佛) 천탑(千塔)이라고 했는데, 우리나라는 10진법을 사용했
기 때문에 으레 많다는 개념을 백·천·만 단위로 과장되게 표현해 왔다. 운주사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헌 기록은 성종 12년(1481)에 간행되어 중종 25년(1530)에 증보된 지리서 ‘동국여지승람’ 권40
‘능성(綾城) 불우(佛宇)조’의 운주사다.
열가지의 미스터리와 오해들
‘천불산(千佛山)에 있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석탑이 각각 일천(一千)씩 있고 또 석실(石室)
이 있는데, 이 석불(二 石佛)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 또 하나는 도선국사(827~898)와 연결
시킨 것인데,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새벽 닭이 울어 공사를 중단했다’는 설화다.
이 기록은 운주사의 역사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뒤쪽 설화는 불상과 불탑을 만든 기법과 조형성이
매우 조급하게 만들어진 듯하다는 생각과 관련되면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나 고려·조선시대는 물론 오늘날에 조성된 불탑이나 석불처럼 불교 교리에서 정해진 원
칙을 기준으로 하여 장인 특유의 솜씨로 잘 다듬어진 것들과 사뭇 차이가 난다는 데서 비롯한 발
상인 것도 같다. 즉, 불탑과 불상을 만든 솜씨가 너무나 거칠고 엉성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시간에
쫓긴 나머지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조금은 성급한 추측이 낳은 표현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추측과 찬사들은 어딘지 모르게 지나친 감상으로 부푼 느낌이다. 학술적 논증을 거쳐 명증
하게 정리되기보다 즉흥적이고 무모한 열정에 치우쳐 휘몰아붙인 흔적들이 보이는 점은 새로운
우려다. 그러다 불쑥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제껏 한국인들이 그토록 순수한 감정으로 헌정해온
찬사들이 씻을 수 없는 수치나 능멸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 엄청난 일을 어찌 감당해
낼 것인가 하는 걱정 때문이다.
이상 나쁜 문제로 심화되기 전에 다시 되짚어보자. 운주사의 그 돌부처와 불탑들에 관해 지금까지
공식, 비공식적으로 논의되어 왔던 의문들을 정리해 보자. 의문점들을 그냥 내던져둔 채 신비하다
느니, 알 수 없다는 말로 얼버무리지 말고 의문의 내용들을 낱낱이 꺼내 햇살 아래에 비춰 보자.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운주사를 주제로 쓴 보고서·기행문·단행본 등을 모두 합치면 30여 종류가
된다. 이들 문헌 자료들은 천불천탑의 신비로 일컬어지는 10여 가지 핵심 내용을 그대로 덮어둔
채 서로가 서로의 견해를 답습하거나 터무니없는 말로 과장하는 동안 운주사는 어느새 신비에
대한 오해의 상징처럼 되었다. 오해하거나 규명을 포기한 채 신비로 포장된 부분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미스터리1] 탑신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의 기원은?
이 문제에 대한 한국 관련자들의 견해는 한결같이 모호하다. 문양의 의미가 천불천탑의 신비를
풀어줄 열쇠임을 알면서도 이제껏 망설였거나 해석을 포기해 왔다면 이는 비난받아야 할 일이다.
이 문양들이 만약 한국의 전통 문화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한국문화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쳐
온 주변국들의 문양사나 역사를 연구했어야 옳다.
그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한국의 자료만으로는 해석되지는 않으니 신비하거나 불가사의하다고
단정지어버린 태도는 매우 편협한 개인주의거나 속좁은 민족주의적 학문 방법의 폐단일 것이다.
X·XX·◇·◇ 등의 문양은 왜 탑신에 장식되어 있을까.
[미스터리 2] 석상은 과연 불상인가?
운주사 주변 야산에 널려 있는 특이한 모습의 석불들을 놓고 불상(佛像)이라고 불러 왔다. 이는
아마도 절의 경내에 있는 것이니 그냥 불상이라고 말한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바
라보면 딱히 불상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여러 가지 특이한 점들을 찾을 수 있다.
누구나 운주사가 있는 전남 지방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석불 무더기들을 두고 남편불·아내불·아
들딸로 부르고 있다. 부처를 이렇게 부르는 관습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부르는
것은 소박한 눈으로 보았을 때 흡사 예사로운 가족의 모임과도 같은 또는 가족 중 누군가를 그리
워하여 만들어 세워 둔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을 받은 데서 생겨난 표현인 것이다.
부처도 그리운 대상임에는 틀림없지만,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차원과는 사뭇 다른 종교적 열
정과 흠모를 바탕으로 한 예배의 대상이다. 그리하여 불상은 여러 가지 까다롭고 심원한 원칙에
따라 조성되며, 조성자의 능력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불상이 지녀야 하는
모든 조건이 갖춰진 불상과 운주사의 석불 모습은 전혀 다르다.
또한 불상은 제작 방법도 중요하지만 배치하는 데도 정해진 교리가 있다. 어떤 교리에도 하나
또는 셋, 주존불과 좌우 협시불로 구성되는 삼존상과 독립불상 외에 불규칙하고 아무렇게나 배열
하도록 하는 예는 없다. 더구나 두 분씩 모시거나 다섯 혹은 여섯 분의 불상을 법당이 아닌 들판
이나 야산에 무더기로 배열하는 경우는 어느 나라에도 없었다.
[미스터리 3] 북두칠성 조형물은 왜 불탑과 함께 배치됐는가?
개인의 기복 대상인 북두칠성 조형물을 석불과 불탑 속에 끌어들인 것은 어떤 관습에서 비롯된
것인가. 칠성 신앙의 주된 상징물인 북두칠성을 예배 대상으로 삼아온 민속은 우리나라에도 고
대적부터 있어 왔다.
불교가 전래된 후 칠성 신앙은 불교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뿌리 깊은 민족의 민속신앙을 껴안지
않고는 불교가 근거지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사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법당
안 어느 한쪽에 칠성단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법당 밖의 한 지점에 독립시켜 칠성각을
지었다.
칠성각의 위치는 보통 법당보다 높은 곳이며 뒤편일 경우가 많다. 북두칠성이 하늘에 있는 별이
어서 높은 곳으로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칠성각 안에는 불교 교리로 편입된 나름의 규례에 따라
탱화나 불상 종류가 모셔져 있다. 그러나 어느 사찰에도 운주사의 경우처럼 불탑과 북두칠성 조형
물을 함께 배치하지는 않는다. 또한 천문(天文) 영역은 제왕의 상징이어서 불탑과의 조화는 상식
밖의 일이다.
[미스터리 4] 석불의 얼굴 모양은 어느 민족의 형상인가?
70여 점의 석불들이 지닌 구체적인 모습을 말하려고 하면 불상으로 보기는 어려운 점이 너무 많다.
얼굴의 형태를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70여 석불 대다수가 매우 기다란 계란형 얼굴을 하고 있다
. 이런 얼굴 모양은 한국의 정통 불상과는 전혀 다르다. 긴 얼굴은 한국인의 모습과도 다르다. 특히
긴 얼굴과 조화를 이루는 유난히 긴 코와 선명한 곡선을 보이는 짙은 눈썹은 우리나라 불상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얼굴 형태는 어느 민족의 얼굴인가.
[미스터리 5] 석불 정수리의 뾰족한 부분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석불의 정수리에 표현된 뾰족한 부분을 불상의 계주(톂珠)로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도 신중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불상의 계주는 ‘법화경’ 안락행품(安樂行品)에서 하는 말인데, 전륜왕
(轉輪王)이 여러 나라를 토벌할 때 병사들 중에서 가장 공로가 큰 사람에게는 왕의 상투 속에
들어 있는 구슬을 상으로 주었다는 데서 비유된 것이다. 따라서 그 형태가 분명하다. 얼굴 모습과
는 별도로 정수리에 상투 모습처럼 볼록하게 얹혀 있다.
그러나 운주사 석불들의 경우는 얼굴 형태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 머리가 뾰족하게 생겼
음을 알 수 있다. 계주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모습은 한국인의 얼굴과는 거리가 멀고, 불상의
인상과도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이런 얼굴 모습은 어느 민족에서 유래된 것인가.
[미스터리 6] 석불의 포개진 손 모양의 기원은?
석불들의 손가락 모양은 불교 교리에서 말하는 인계(印契)·결인(結印)·인상(印相)과 다르다. 불상
에서 손가락 모양을 짜 모아 만든 형상은 모든 부처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힘과 덕을 표시하는
매우 특별하고 상징적인 것이다.
대표적인 손가락 모양으로는 시무외인(施無畏印)·법계정인(法界定印)·미타정인(彌陀定印)이 있
다. 시무외인은 오른손을 들고 다섯 손가락을 펴서 손바닥이 밖으로 향하게 한 것인데, 덕을 베풀
고 두려움을 없애는 손 모양이다.
반갑다는 인사를 할 때,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거나 항복의 표시로 이런 손 모양
을 한다.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은 오른손은 다섯 손가락을 벌려 어깨 또는 가슴 앞에 올리
고 왼손은 다섯 손가락을 벌려 무릎 근처에 내림으로써 함께 바깥을 나타내는 모습이다. 모든 부
처의 공통된 손가락 모습인데, 석가모니상에서 주로 보이지만 아미타불에서도 이런 손 모양을 볼
수 있다.
법계정인은, 두 손을 포개어 무릎 위에 얹어 놓되 두 엄지손가락을 서로 맞대고 오른손은 왼손
위에 올려 놓는 손 모양이다. 미타정인은 두 손바닥을 위로 해서 깍지를 끼고, 양 인지(人指)를
세워서 서로 등을 맞닿게 하여 양 엄지를 그 끝에 가로 놓는 손 모양이다. 지권인(智拳印)은 좌우
의 손을 주먹쥐고 오른 주먹으로 왼쪽 인지를 잡는 손모양이다. 왼손 인지를 세우고 오른손 주먹
가운데 넣는다.
오른손은 부처님, 왼손은 중생으로서 보살의 신묘한 법리를 뜻하는 손 모양이다. 운주사 석불들의
손 모양은 불교 교리에서 정해 둔 손 모양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한 이유는 무엇
이며, 어느 나라 민속에서 유래된 것인가.
[미스터리 7] 석불의 옷 모양은 한민족 고유의 것인가?
석불들이 보여주는 의문(衣紋)이나 의습선을 불의(佛衣), 즉 승려가 입는 세 가지 가사 중 어느
하나를 입고 있는 모습으로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승려가 입는 세 가지 옷은 가사(袈裟)를 말한다.
대의(大衣)·오조(五條)·칠조(七條)로 나뉘는데, 대의란 세 종류 중에서 가장 큰 가사를 말한다.
9조, 11조, 13조(하품), 15조, 17조, 19조(중품), 21조, 23조, 25조(상품)의 9종류가 있다. 설법이나
탁발할 때 입는다. 승가리(僧伽梨, Samghati)는 붉은 빛깔의 큰 예복이며, 울타라승(Uttara-
asanga)은 흔히 윗옷인데, 한 겹으로 일곱 쪽의 헝겊 조각을 이어 만든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옷을 입었을 때 나타나는 문양이나 선(線)이 수직선이나 빗금으로 나타나기는 불가능
하다. 운주사 석상들의 의습선은 부드러운 곡선이 거의 없고 거칠고 맺힌 데가 없는 직선이 대부
분이며, 몇 몇 석상에서 곡선 형태가 있기는 하지만 입고 있는 옷의 종류가 불교 교리에서 정한
것이 아닌 일반적인 옷으로 보이는 선이다.
그 옷의 종류도 한국인의 전통의상이 아닌 이민족들의 의상에서나 드물게 볼 수 있는 옷으로 추
정된다. 따라서 옷의 형상이 이 석상들을 불상으로 보기가 더욱 어렵게 한다. 그렇다면 이 석상들
의 정체는 무엇인가.
[미스터리 8. 탑의 조형 기법은 고려의 정통 양식인가?
한 장소에 신라탑과 백제탑 양식이 공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그런 탑의 탑신에 기하
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신라탑(분황사탑·감은사지탑)의 기법을 전수받은
경주 부근의 장인과 백제탑 기법을 익힌 전라도나 충청도에 사는 장인들을 운주사에 불러모아
함께 작업을 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였을까. 분명한
것은 그가 왕이나 귀족은 아니라는 점이다.
탑의 양식이나 완성도를 놓고 볼 때 국가권력이 관여했다면 고려의 정통 양식과 완전성이 드러
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탑신에 새겨진 문양은 고려의 정통성과 무관한 것인데 이를 허용했
을 리 없기 때문이다. 누가, 왜 이런 일을 했을까.
[미스터리 9] 운주사의 탑 배치법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불교 교리에서 탑을 모시는 데는 일정한 원칙이 있다. 한 사찰에서 한 개의 탑만 세우는 일탑일
가람제(一塔一伽藍制)와 한 절에서 두 개의 탑을 동서로 나란히 세우는 쌍탑일가람제(雙塔一伽
藍制)가 그렇다. 신라를 기준으로 한다면 통일신라 이전은 일탑제로서 합천 해인사가 대표적인
경우이며, 통일 이후부터 쌍탑제로 바뀌었는데 경주에 있었던 사천왕사의 탑이 대표적인 경우다.
사찰의 경내가 아무리 넓어도 탑을 세우는 원칙은 반드시 지켜졌다. 백제시대의 익산 미륵사의
경우 그토록 광활한 터에도 동서로 두 개의 거대한 탑을 세웠을 뿐이며,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
석가탑도 쌍탑제에 따른 것이다.
간혹 산중의 사찰과 들판의 사찰에 따라 탑제가 다르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사찰의 위치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시대적 특성에 따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운주사의 탑은 일탑제도 쌍탑
제도 따르지 않았다. 한 곳에 무려 18기의 탑을 세워둔 것도 어느 민족의 오래 된 관습에 따른 것일까.
이 때의 탑이라면 불교 교리에서 확립된 조탑(造塔)의 관습에 의한 불탑 본연의 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탑의 형식을 빌린 또 다른 제사의식이나 특이한 제천의식의 상징물이나 기념물
로서 응용된 것은 아닐까.
[미스터리 10] 천불천탑은 누가, 왜 조성했는가?
이와 같은 희귀한 일을 누가, 언제, 왜, 어떤 방법으로 했을까.
이 신비들이 오해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결과는 참담한 부끄러움이 될 것이다. 부끄러
움을 신비로 알고 숭배하면서 찬사를 헌정했다면 도대체 한국인은 무엇을 하는 민족인가. 부처가
아닌 것을 부처로 알고 예배드려 왔다면 돌멩이가 부처로 변할 수 있을까. 그저 평범한 사람 모습
을 돌멩이로 다듬어 놓고 기도와 예물을 올린다고 하여 부처로 바뀔 수 있을까.
천불천탑 조성기의 시대적 상황
X, XX 문양이 새겨진 운주사 7층 석탑
운주사 천불천탑에 얽힌 문제를 풀기 위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일은 천불천탑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13세기 고려의 역사 상황이다. 이곳 석불·석탑에서 발견되는 양식 기법이 13세기를 전후한
고려 중기의 특색을 한결같이 보여주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른 것이다. 우선 13세기의
가장 큰 특징부터 살펴보면 최충헌(催忠獻)으로 대표되는 최씨 무신정권의 등장과 몽골의 고려
침략, 삼별초의 항쟁과 원나라의 내정간섭, 고려 왕실의 원나라 예속화를 들 수 있다.
이 시기 고려는 고종(1214~59), 원종(1260~74), 충렬왕(1275~1308)으로 이어지는 불우하고 위기
에 찬 시대였다. 고종 18년(1231) 8월29일에 시작된 몽골의 고려 침략은 1259년 고려의 태자 전
(奠: 뒤의 원종)이 아버지 고종을 대신해 몽골에 입조(入朝)함으로써 30여 년 간의 전쟁이 종식될
때까지 고려 전역을 잔혹하게 짓밟았다.
긴 전쟁 기간 내내 짓밟히고 무너져 내리기만 했던 고려에는 어느새 몽골의 풍속이 유행했는데,
연지·곤지 등 여인들의 화장법에서, 남바위·조바우 등 남녀의 모자와 의복, 말 타는 데 사용되는
도구들에 이르기까지 고려 민속에 큰 변화를 끼쳤다.
고종은 재위 3년 되던 해부터 몽골과 갈등을 겪었다. 몽골에 쫓긴 거란족이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공했다. 고려는 부처의 위력을 빌려 적을 퇴치시킬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불교에 깊이 의존했다.
대장경을 만들고 각종 불교 의식을 빈번하게 연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고종은 재위 6년 몽골과 형제 결의를 맺고 거란족을 섬멸시키는 과정에서 몽골의 막강한 군사력
을 절실히 느꼈다. 몽골의 군사력은 곧 고려를 침공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게 했다.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준비를 서두르고 있을 때 최신 무신정권의 1세대 집정인
최충헌이 죽고 최 우(催瑀)가 대권을 장악하면서부터 무신정권 내부의 모순들이 생겨났다. 고종
은 재위 45년이라는 매우 긴 통치 기간 내내 나라 안으로는 무신정권의 독재로 인해 실권 없는
허수아비 군주로 지내야 했고, 나라 밖으로는 몽골의 7차에 걸친 침략 전쟁으로 능멸과 회한의
날을 살다 죽은 군주였다.
몽골군은 고려의 정신이 깃들인 부인사 대장경판을 불질렀고, 구이(九夷)의 조공을 받으며 이민
족에게 정복당하지 않는다는 민족신앙의 상징인 황룡사 9층탑까지 불태우면서 철저하게 짓밟았다.
최 우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삼별초를 만들었다. 삼별초는 고려 정권이 강화도로 천도
하여 몽골과의 항전을 선언하게 된 핵심 세력이었다. 그러나 최 우가 죽고 혼미를 거듭하던 끝에
삼별초를 이끌던 김 준이 최씨 정권을 타도했다. 반역은 계속되었다. 임 연(林衍)은 다시 김 준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다. 고종의 뒤를 이은 원종은 이때 무신정권을 타도하고 왕권 회복을 노렸다.
원종은 몽골과의 유대관계를 이용해 무신정권을 제거하려고 했다.
원종 10년(1269) 몽골에 이런 뜻을 전하며 무력 개입을 요청했다. 몽골의 힘을 빌려 고려 왕실의
회복을 도모한 것이다. 이때 몽골은 나라 이름을 원(元)으로 바꾸고 수도를 연경으로 옮길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원종 11년(1270) 원나라는 원종을 돕기 위해 홍다구(洪茶丘·1244~91)에게 3,000명의 군대를 주어
고려로 파견했다. 홍다구는 조부 홍대순(大純, 일명 大宣)·아버지 홍복원(福源, 일명 福良)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희대의 매국노였고, 그가 지휘한 3,000명의 군사라는 것도 여러 차례 몽골과
의 전투에서 몽골에 투항한 고려 출신 군인들이었다.
고려인에 의하여 고려인을 다스리게 하겠다는 쿠빌라이 칸(세조, 世祖)의 통치 방식에 따른 것이
었다. 홍다구는 쿠빌라이 칸의 양자로 불리면서 막강한 권세를 휘둘렀다. 쿠빌라이 칸은 수도를
옮기고(1271년)나서부터 국호를 대원(大元)으로 바꾸면서 강력하고 화려한 원제국 시대를 시작했다.
홍다구·흔도(欣道)·아해(阿海) 등이 이끄는 원나라 군대가 개경에 들어와 주둔하면서 원종을 호위
했다. 원종은 강화도를 버리고 개경으로 돌아온 것이다. 삼별초는 고뇌에 빠졌다. 원종을 따라
개경으로 돌아올 수 없는 사정이 원종과의 사이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원종이 삼별초 해산을
명령했던 것이다. 무신세력을 제압하려면 그 핵심인 삼별초를 없애야만 했기 때문이다.
삼별초가 왕의 명령을 거부하는 동안 삼별초의 명단이 왕의 손에 들어갔다. 이제는 왕과 갈라서야
할 운명이었다. 그때 고려 민중들은 원종이 원나라에 찾아가 쿠빌라이에게 머리를 숙이고 원의
군사를 등에 업고 돌아와 삼별초를 제압하려고 하자 왕의 태도를 굴욕이라고 비난했다. 삼별초가
왕에 맞서는 태도를 지지했다.
삼별초는 반몽골 반정부의 자주 독립 수호 운동의 핵심 세력으로 등장했다. 외세를 끌어들인
왕과 왕실파를 비난하면서 삼별초를 지지하고 나선 민중의 성원을 업고 삼별초는 대몽골, 항전
으로 맞섰다. 삼별초는 강화도를 버리고 남해 바다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대정부,
대몽골전을 시작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민중들이 협력하면서 위세를 크게 떨쳤다. 그러자 고려
정부는 고려군과 몽골군을 합쳐 연합군을 편성하여 삼별초 진압에 나섰다.
1270년 9월부터 73년 2월까지 3년여에 걸쳐 계속된 엽합군의 삼별초 토벌 작전을 지휘한 것은
홍다구였다. 흔도·아해·김방경은 홍다구의 지시에 따랐다. 삼별초는 1271년 5월 연합군의 총공격
으로 궤멸되어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겼다. 1273년 2월 연합군은 다시 제주도를 총공격하여 삼별
초를 완전히 제압했다.
고려에서 삼별초가 완전 소탕되자 원의 세조는 홍다구에게 일본 정벌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
다. 홍다구에게는 고려군민총관(高麗軍民總官)이라는 직함과 함께 일본 정벌에 필요한 군량미와
선박을 만드는 총책임을 맡겼다. 홍다구의 권세는 곧 쿠빌라이의 권세를 상징하는 것이어서
고려의 왕과 귀족들은 그의 눈에 들기 위해 애썼다.
그는 주로 전라도 지방에 머무르면서 일본 정벌을 준비했는데, 그가 고려에 머무른 기간은 약
10년이었다. 홍다구가 몽골(원)군의 사령관으로서 삼별초를 소탕하기 위해 전라도 곳곳을 쏘다
녔던 흔적은 여러 문헌에 남아 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 허 균의 ‘도문대작’, 허 준의 ‘동의보감’ 기록에는 무등산의 수박이 홍다구에
의해 전파되었다고 했다. 쌀이 많이 생산되는 강경들과 나주벌을 비롯해 영산강을 낀 호남평야
일대의 쌀을 군량미로 확보하고, 일본 공격용 전함을 만들 목재를 구하기 위해 남부지방의 산맥
을 두루 훑었던 홍다구의 위세는 감히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었다.
千佛千塔의 신비 풀기 위한 실험적 일들
몽골인의 전통가옥 <겔>의 X자 구조가 운주사 7층 석탑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천불천탑의 신비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으로 추측되는 13세기의 역사와
시대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몽골군과 홍다구를 통한 몽골문화의 영향과 천불천탑의 신비 사이에
는 어떤 비밀스러운 관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졌다.
더욱이 운주사 탑신에 새겨진 문양에 대해 국내 연구자들에게서 아무런 단서도 얻을 수 없었고,
이 문양과 한국 민속은 아무 상관도 없음이 거듭 밝혀져 이제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고 있을 때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소재구(蘇在龜) 선생에게 운주사 탑신의 문양이
몽골 민속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때부터 몽골의 관련 전문가나 학자
를 찾기 시작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세 분의 전문 학자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2003년 12월27일부터 30일까지 4일 동안에 걸쳐 세 명의 몽골 학자를 만날 수 있었다. 몽골 중세
사를 연구하는 소드놈 촐몽 교수, 몽골 민속학을 대표하는 겔렉참즈 체렌한드 교수, 중앙아시아와
동북아 지역 석인상(石人像)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도브도인 바야르 교수를 방문해 운주사
천불천탑의 비밀에 속할 듯싶은 귀중한 의견을 들었다.
준비해간 천불천탑 관련 사진 자료를 먼저 보여준 다음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순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통역은 국립울란바토르 대학교 몽골사 전공 박사과정에 있는 양혜숙 씨가 맡아 주었다.
필자 고려와 몽골(원) 사이에서 매우 특별한 활약을 한 홍다구 등 몽골에서 파견한 인물들에 대
하여 몽골 역사 기록은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가.
소드놈 촐몽 교수 그들에 관한 정통 역사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몽골(원)의 역사 기록은
1468년 명나라에 원이 멸망당하면서 대부분 파괴되기 시작했는데, 홍건적은 몽골(원) 역사 기록
을 불태우고 파괴한 대표적 사건이다. ‘몽골비사’ ‘집사’ 같은 몽골 정통 역사 기록도 그렇지만 대
부분의 몽골 역사는 고려나 중국측 자료를 러시아 학자들이 수집, 정리,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재정립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260~90년이라는 시기는 몽골 정치 중심이 연경으로 옮겨가는 시기였다. 1271년은 대원(大元)
제국이 시작되어 화려하고 강력한 세계 제패의 기상이 싹튼 시기였다. 아마 고려도 원제국의
이런 기세에 영향받았을 것이다. 원나라가 망한 뒤 다시 수도를 옮기는 과정에서 문헌기록을 실
은 수레가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예상치 못한 곤경들을 겪으면서 또 없어졌다.
몽골인의 탑을 세우는 관습
촐몽 탑에 관한 관습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석인상의 역사부터 알아야 한다. 석인상은 유라시아
유목민족들에게 사람 형상을 한 석인상을 만드는 관습이 일찍부터 있어 왔다. 청동기시대부터다.
조상의 형상을 만들어 제사지내기 위한 신앙측면과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선조들의 위업을 길이
받들기 위해 세웠다.
이 관습은 돌궐·거란·몽골로 전승되었는데, 13세기부터 본격화한 몽골의 석인상은 탑을 세우는
이유와 겹쳐졌다. 전쟁 때 나라를 구한 영웅을 기념하는 기념물도 세웠는데, 이것이 탑과도 관련
이 있다. 몽골인들의 정서에는 샤머니즘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운주사 천불천탑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갈마저 문양의 안쪽에 활짝 핀 꽃은 뒷날 십자(十) 꽃 문양으로 변하는데, 십자의 끝에 날카로운
창이나 화살 모양을 하여 사원을 수호하는 문양으로 응용되었다. 이 갈마저 문양이 몽골의 민속
에서 나타나게 된 내력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몽골의 사찰 지붕 처마 끝이나 법당 출입문
위에 장식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신성을 수호하는 것, 악귀를 물리치는 의미로 해석되는 몽골의
민속과 불교의 융합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몽골의 전통 문양이
언제, 어떻게, 운주사 탑신에 새겨질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또 하나는 70여 구의 석상 중에서 불상으로서의 원칙을 준수하여 조성된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13세기 몽골의 석인상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바야르 교수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 돌궐시대 칸의 제사 유적지에 배치된 칸과 신하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은 점
은 또 다른 충격이다.
‘성불한 석가모니 부처님은 중성불인데 운주사에는 남편불·아내불·아들 딸로 불리는 불상’이 있
다는 기존의 주장에 일찍 귀기울여야 했다는 후회도 생긴다. 대부분의 석상 생김새가 기다란 계
란형인데다 유달리 긴 콧날을 보면서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 더욱 부끄럽다.
감실에 등을 대고 앉아 있는 두 석상의 손 모양도 불상의 인계로는 보기 어려운데도 그저 절 안에
있으니 불상이리라는 막연하고 미련한 추측으로 밀어붙여 온 것도 참회해야 할 태도였다.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탑이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과 흔히 와불이라고 부르는 석상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북쪽을 향하여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 석상이 석인상이 아니라
부처님이라고 한다면 그 모습은 분명 결가부좌한 형상이다.
가부좌를 튼 상태로 눕는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석상은 남쪽을 등지고 북쪽을 향해
앉아 있다. 왜 북쪽을 향하고 있을까. 모든 탑들이 북쪽으로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북쪽은 몽골군의 조국이 있는 방향이다.
북두칠성은 몽골군과 연결시키면 금방 이해되는 부분이다. 신라 형식의 탑과 백제 형식의 탑이
공존하는 것은 경주 부근의 장인과 백제 탑을 만들 줄 아는 장인을 한 장소에 데려다놓고 함께
작업을 시켰기 때문으로 보인다.
절의 출입문에 새겨진 ◇과 십자형 꽃 문양.
홍다구가 지휘하는 몽골군 속에는 고려에서 투항한 고려인 외에 흔도·아해가 데려온 몽골군이
섞여 있었다. 몽골군 안에는 무당이 따라와 있었고, 몽골은 돌궐과 거란족의 문화를 그대로 답습
한 민족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증거들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천불천탑은 삼별초를 토벌한 몽골
군이 그들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승전기념물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홍다구가 고려에 와서 주로 전라도 남부 해안 지방에서 머물렀던 1271년 5월에서 72년 2월
까지의 10개월 동안을 먼저 주목해 봐야 할 듯싶다. 그러나 이 기간은 제주도로 달아난 삼별초의
세력이 많이 위축된 것이 사실이었지만 완전히 소탕된 것은 아니어서 이 기간에 운주사 천불천탑
을 조성했으리라고는 짐작하기 어렵다.
설령 이 시기에 조성했다고 하더라도 1272년 2월 이후부터 다시 삼별초가 남해안 지방을 휩쓰는
일대 혼란기가 한동안 더 계속되었기 때문에 몽골군이 세운 천불천탑을 그냥 내버려두었을 것이
라고는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삼별초가 완전 소탕된 1273년 2월 이후부터 일본 정벌이 시작된 74년까지의 약 1년여
동안이 매우 유력해 보인다. 이 때는 고려 안에서 어떤 군사적 불안도 존재하지 않았고, 홍다구의
권세 또한 매우 막강하여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사진:선재사진첩에서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