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그림자, 무명(無明) - 온진목(수필가)

종교는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행복과 기쁨의 생활을 갖도록 하는데 있다. 이 말은
인간에게서 삶의 고통과 슬픔을 제거하는 데 종교의 목적과 신앙의 의의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행
복과 기쁨의 생활은 그 삶이 밝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결국 종교의 기능이나 신앙의 효력은 우리의 삶
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어둠을 걷어내는 데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어둠을 불교에서는 무명
(無名)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무명은 인간의 행복과 기쁨을 장애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규정지
어지고 있다. 무명이 인간을 행복과 기쁨으로 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그 무명으로 인하여 사물의
실재를 그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리를 진리답게 못하는 어리석음인 것이다.

 무명은 밝음[明]의 반대개념으로서 밝음이 없기 때문에, 또는 밝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   로 바른 길
을 가지 못하고 갈팡질팡 미(迷)하게 되고 그렇게 미혹하는 데서 고통은 자연 따르기 마련이다. 무명
은 범어로 Avidya이다. 참다운 지견(智見)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은 12연기에서 그 연기의 첫 갈래
로 보고 있다.

 이 무명을 <아함경>에것 불타의 진리를 모르는 것, 즉 무지(無智)로서 갈애와 표리를 이루는 것으로
본다. 유부(有部)에서는 번뇌 가운데 그 어둠이 제일 짙기 때문에 무명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기신론>
에선 이 무명을 깨달음이 없는 것·깨닫지 못한 것[不覺]이라 한다.

여기에서는 불각에도 근본무명과 지말(枝末)무명이 있다고 하며, 근본무명을 다시 근본불가·무시무명
(無始無明)·원품무명(元品無明)·홀연염기(忽然念起)무명·원초일념(元初一念)이라고도 한다. 원초일념
이란 진여평등의 진리에 통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홀연히 차별이나 대립의 생각이 일어나는데, 이것
이 모든 번뇌의 시작이고 미망의 시작으로 다른 번외에서 따라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
나 천태종에서는 공·가·중(空假中)의 3관에 의하여 무명 등 3혹(惑)을 끊는다고 한다. 무명을 끊음에
있어서는 별교(別敎)의 10회향(廻向)의 자리에 항복하여 초지(初地)이상의 12계위에서 12품의 무명을
끊는다고 하였다.

 무명을 끊는다고 하는 것, 이것이 불교의 종교적 이상이다. 해탈 또는 성불이란 개념도    이 무명 끊
음의 다른 말이다. 무명이 있는 한 해탈이나 성불은 절대 가능할 수가 없다.    무명은 어둠으로써 정체
되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행(行)으로 변하여 표출되고 발현되기 마련인데, 무명이
번뇌의 원초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무명의 원리에 있다.

 실체 아닌 것을 실체로 보는 것이 무명의 소치다. 그것은 '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실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 집착이 무명에 의한 행이다.

 실체라고 착각하는 생각, 즉 망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행복과 기쁨을 버리고 고통의 바다로 이끄는
끈이다. 그리고 그것이 덫이다. 우리는 바르게 보는 법을 알아야 한다. 바르게 본다는 것은 밝음이 있
는 곳, 명을 찾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라는 것은 이 명, 밝음을 향한 무한한 노력이라 해도 틀리지 않
는 말이다. 인간은 오늘날까지 무명이 아닌 밝음을 맛보려고 부단히 머리를 혹사해왔다. 그 결과 오늘
과 같은 보잘 것 있는 첨단의 문명과 문화를 발달시키고 또 창조해 왔던 이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문명이나 문호는 어둠의 무명을 걷어내는 인간작업에 불과하다. 그런데 오늘의 인간
생활 즉, 삶은 어떤가. 과연 첨단산업과 초과학문명과 문화 속에서 행복과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 여
기에 대하여 누구도 '예'하기보다는 '아니오'라는 대답을 쉽게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그 첨단
산업·고도의 문명들이 인간의 마음에 드리워 있는 어두운 그림자, 무명을 제대로 거두어 내지 못했다
는 증거다. 그 무명이 더 큰 힘의 행(行)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증거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명의 처리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