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의 이상과 현대인 - 이기영(한국불교연구원 원장)

 삼귀의를 다시 생각하며
 삼보께 귀의한다는 것과 열반을 이룬다는 것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열반을 이룬다는 것을 성불
한다는 말로도 바꿀 수가 있다면 삼보께 귀의하는 것과 성불한다는 것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우리는 질문을 이렇게 바꿔 볼 수가 있다. 성불을 선가(禪家)들이 말하는 것처럼 견성(見性)성불이라
고 말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삼보께 귀의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되는가? 그렇다면 어떤 의미
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을 설정해 놓고 나는 현대인과 열반의 이상의 문제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나는 단적으로 소승불교의 불·법·승 삼보관을 전제로한 삼귀의는 결코 현대인들이 놀랄만한 새로운
진리로서 매력을 갖고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석가모니란 역사적 인간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이 담긴
파알리어 장경과 율장에 따라 조직된 상가와 이것을 삼보로 받들고 그것은 귀의처, 피난처, 의지처로
삼고 사는생활, 그래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열반이 무엇인가.

 만약 그 열반이 현실세계로부터의 도피, 공(空)의 세계, 그 피안(彼岸)에로의 출세간(出世間), 입멸(入
滅), 입적(入寂)이라면 그것이 오늘 이 시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대승불교를 믿고 있다고 자처하는 오늘의 한국 불교인들은 삼귀의의 정신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대승기신론의 귀명삼보게(歸命三　偈)의 의이를 힘주어 강조했던 원효선사의 가르침에 아직도 우리
나라의 승속(僧俗)은 여전히 귀머거리요 벙어리인 느낌이 짙다. 일심(一心)이 불이요 일심이 법이요
일심이 승이다. 일심이외에 다른 아무런 의지할 것도 없다라고 한 말씀의 뜻을 알고 이 일심의 근원
으로 돌아가[歸一心源], 널리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만이 참된 삼귀의의 태도라고 밝힌 그 가
르침을 잘 음미하면, 거기서 도출되는 열반의 의의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저절로 명백해 질 것이
다. 우리가 어디로 간다거나 누구에게 의지한다거나 하는 것이 열반이 아니다. 더욱이 열반은 한 개인
만의 일, 한 개인의 세계에 국한되는 일,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래장(如來藏)이다. 단순한 중생이 아니다. 더더욱 유식가(唯識家)들의 주장처럼 벌써 태어
날 때부터 다섯가지로 그 성(性)이 정해져서 옴짝달싹 못하는 필연적 운명의 노예인 존재들도 아니다.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의 대원리 그대로 누구나 발심만 하면 성불할 수 있다는 대전
제아래, 성문도 독각도 아닌 보살로서 신심(信心)과 반야(般若)와 선정(禪定), 그리고 대비(大悲)의 실
천을 온전하게 구족해가기만 하면 섯뿔리 의식하고 의도하지 안더라도 거기에 불국정토가 그냥 그대
로 와 있게 되는 것, 이런 이치를 믿고 전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을 우리네 교단들은 얼마나
정확히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반야심경, 금강경을 생각하며

 우리 불교계의 전통에는 반야심경과 금강격을 다른 모든 대승경전을 제처놓고 제일로 간주하는 선
(禪)적인 전통이 있다. 중국 선종의 영향이다.

 이 두 경이 가르치는 근본사상은 공도리이다.

 공(空)관의 확립이 깨달음의 기본이라는 것에는 이견(異見)이 없다. 그러나 공 일변도만을 저절로 역
사속에서 그 명맥을 상실한 것은 그 종파가 현실생활을 무시하고 공견(空見)만을 부르짖었기 때문이
다. 오늘날도 이른바 중관학파(中觀學派)혹은 중론파(中論派)라 흐는 불교학자들이 이 세상에서 이
몸을 갖고, 이 몸에 주어진 제기능을 갖고 진지하게 살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 어정쩡한 태도를
가지고 세인의 이목을 현혹시키고 있는 것은 참으로 한탄스러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이 잘못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잘새겨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 경들
이 성립된 시대배경을 알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도 집요하리만큼 격렬하게 공(空), 무(無)를 강조했던
가 하는 이유를 알고 그 말뜻을 새겼어야 했다. 그 말은 대승경전들까지도 모두가 석가 일대의 설법
그대로라고 맹신한 지나친 신심 때문에, 그리고 많은 다른 경전들을 똑같이 넓게 깊게 공부하지 않은
종파적 편견 때문에 오해는 생겼던 것이다.

 열반은 색·수·상·생·식의 인간적 기능을 다 죽여버린 연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오온(五蘊)을
무루(無漏)한 것으로, 새지 않는 것으로, 원효나 기신론의 말대로라면 무애자재(無　自在)한 것으로
만들 때 얻어지는 것이다.

 기신론의 귀명삼보계는 또 이 점에서도 우리에게 올바른 수행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수행에 단지 공을 깨닫는 여실수행(如實修行)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변수행(
　修行)이란 무애지(無　智)를 닦아가는 수행, 이 세상에 살면서 수많은 사람, 수많은 것들과 인연을
맺고 살되, 그 인연관계가 무애한 것, 자재한 것이 되도록 수행해 가라는 가르침이 그 속에 있다. 이
변수행은 인연은 끊고서 하는 수행이 아니라 인연을 맺으며 하는 수행이다.

 나는 이것이 화엄경에 사사무애법계(事事無　法界)의 이상과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열반경의 이자삼점을 생각하며

 열반경의 이자 삼점(伊字三点)은 열반에는 법신과 반야와 해탈, 이 셋이 솟의 세 발처럼( )실담글자
"이"의 세 점처럼 동시에 구족되어 있어야 함을 강조한 교훈이다.

 반야는 사물의 공성(空性)을 깨닫는 지혜를 말하지 않는가. 현대인들, 물질주의의 속물(俗物)자체인
현대인들은 반야를 모른다. 반야지혜가 없다. 그런데 그 반야지혜가 공을 깨닫는 그것만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용수가 잘 지적했고, 천태대사(天台)가 보살영락본업경을 보고 깨달았듯이
공이 사물의 본성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물은 연기로서 가(假)인 것을 간과해도 안된다. 공만을 아는
것을 진제, 가만을 아는 것을 속제라고 했다. 그런데, 이 공과 가, 진과 속은 두 개의 아주 다른 별개의
실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면서 둘이 아니다. '진속불이'다라고 깨닫는 것이 올바른 깨달음, 참
다운 반야지혜, 마하반야바라밀다이다. 이것을 중도제일의제라고 했다. 공·가·중 삼제가 원융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참 지혜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 점은 다른 많은 견해자치에도 불구하고 원효가 천태지자대사와 의견을 같이 하는 점이다.

 반야를 갖추었다고 그것 만으로 열반이 다 된 것이 아니다. 해탈이 있어야 한다. 해탈이 무엇인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이다. 번뇌망상의 속박, 번뇌망상이 빚어낸 과거의 죄업(罪業)으로부터의 해방,
진정한 의미에서 인연관계가 대립 마찰 갈등이 아닌 상호보완, 주고 받는 관계, 그래서 서로 없어서
는 안되는 상입(相入), 상즉(相卽)의 관계가 될 상태, 동체대비(同　大悲)가 이루어진 상태, 그것이
해탈이다.

 그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기주의적인 나란 의식이 죽어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무
아(無我)가 된 나는 대아(大我)로 탈바꿈한다. 그 대아(大我)는 허무가 아니다. 그것을 법신(法身)이라
고 했다.

 법신에 두가지가 있다. 경전들에 나타난 법신의 의미를 그 발생의 순서를 따라 더듬어 보면 부처님의
말씀을 법신이라고 했던 대승의 초기시대의 것이 있다. 화엄경에서는 진여한 이(理)의 세계, 이법계
(理法界)를 비로자나법신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란 말에 우리가 이 법신에 어떤 사람의 이름과 형상을
상상하면 망상이 된다. 화엄경의 이 법신은 광명변조(光明變照)의 뜻이다. 빛을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 보신이자 승응신(勝應身)이 노사나라고 한다. 노사노도 사람의 형상으로 상상해서는 안된다. 이것
은 국토세간, 기세간(器世間)이다. 대자연이다. 여기에는 이미 열반이 와 있다. 석가모니불은 이 노사
나불과 함께 "이 법계"의 법신의 응화신(應化身)이다. 천태는 이것을 열응신(劣應身)이라고 한다.

 법신의 또다른 의미는 오분법신(五分法身)으로 계·정·혜·해탈·해탈지견이란 다섯가지 우성부분을
가진 이 세속속에 들어와 일하시는 부처님의 모습이다. 이 오분법신이 바로 무루한 오온이라는 원효
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가?

 출세간했다가 다시 그 출세간에서 조차 출(出)한 출출세간(出出世間)의 법신, 공·가·중 삼제를 원융
하게 갖추고 진·속·불이(眞俗不二)로 사는 참 삶의 모습, 우리는 현대의 열반이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